레트로의 변화사 : 제사와 종교 안에 묶여있었던 레트로, 현대에 들어 날개를 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의 순간만이 아니라 지나간 과거,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산다. 인간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을 교차하며 혼돈과 질서를 반복한다. 레트로는 이러한 혼돈과 질서의 간극에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 그 경험의 대상물을 오늘에 현재화시키는 노력은 예전에도 있었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엘리아데(Mircea Eliade)에 따르면 인간은 현재의 불안감과 우울감, 죽음에의 공포, 신에 대한 외경심으로 이미 지나간 과거의 경험을 소환하고 이것을 현재의 생활 방식 공동체 유지 기제가 바로 제사와 종교였다.

 

 

제사는 과거의 존재, 그 존재가 남긴 유산과 정서적 자취를 현재의 특별한 예식(ritual)의 방법으로 재소통(re-communicate)한다. 원시 부족 공동체의 제사보다 종교는 더욱 그러하다. 과거의 특별한 존재가 성신화(성신화)한다.  성신화된 존재의 말은 경전이 되고, 그 경전은 후대인들의 삶의 맥락을 좌우한다. 경전에 담긴 과거의 신은 종교를 따르는 이들로 하여금 회상과 회심(회개)를 행위하게 한다.  서구 유럽에서는 19세기 후반, 근대의 종말을 향한 철학적 투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적어도 이러한 움직임은 수천년간 계속되었다.

비단 서구유럽 만이 아니다. 종교의 역사를 가진 모든 사회가 다 과거를 회상하고 오늘에 그 회상의 대상을 재경험해 왔다. 조상이 남긴 물건과 그림뿐만 아니라 말과 글을 통해 선대의 과거를 회상했다.  그 회상은 반드시 개인이나 공동체, 집단을 유지하고 통제하는 제도적 기제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복고’, ‘복고풍’이라는 것은 조상이나 왕, 귀족처럼 이른바 ‘높은 존재’들의 가치를 따르고 이를 공유하기 위한 행동의 발현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복고라는 것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서구의 르네상스인들은 과거 그리스인들의 복식을 재현한 옷을 즐겨 입었다. 휴머니즘의 회복이라는 전사회적인 목표가 그려내는 현현의 그림이 고대 그리스의 문예부흥기의 그리스인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19세기 메이지 유신이 발흥한 시점에 무려 200여 년 전,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의 복식 문양이 귀족들 사이에 유행했다. 실학이 널리 퍼진 19세기의 후반의 조선도 이와 비슷했다.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이들 나라를 통해 전해진 서구문물에 반하여 조선 본래의 것을 회복하자는 운동이 양반, 귀족계급 중심으로 일어났다. 양반과 상민의 복식이 갈수록 편해지고 화려해지는 가운데, 몇몇 양반들은 조선초기의 고려풍 옷을 입을 것을 권장했다.

크게 보면 옛것을 오늘에 되살려 호흡하자는 레트로의 정신과 맞닿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개인들이 복고풍의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옛것을 반추하지 않았다. 문화의 중심이 왕이나 귀족, 상층계급들에게 있었으므로 복고풍 마저도 그들의 인식변화 탓이 컸다.

복고는 과거의 역사에 묻힌 오래된 물건과 이야기를 오늘에 되살린다. 복고의 주인공이자 향유 주체는 평범한 소비자들이다. 그것이 오늘날  레트로의 정신이다. 오늘의 레트로는 제사, 종교적 행위를 따로 요구하지 않는다. 이제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힘과 자격은 평범한 오늘을 사는 시민과 소비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레트로가 바쁘고 복잡한 현대사회의 변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력하게라는 현대사회의 슬로건은 레트로의 한 마당 앞에서  천천히, 적절한 높이로, 적절한 힘으로 과거를 다시 불러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레트로는 약 10년을 주기로 발흥하며 그  효과는 1년 정도 갈 것이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옛것을 추억한다, 그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모인다는 생각은 없었다. 문화 발전의 흐름 속에서 더 찍어내고 만들어야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레트로를 소환시키기에는, 미래를 내다보며 채워야할 것이 훨씬더 많았다. 레트로는 오늘의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1990년대의 한국은 레트로를 견인하기에는 만들어야할 시대의 유산, 시대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 레트로 트렌드가 처음으로 나타난 거다.

정보통신 기술과 인터넷의 혁명적 발전 속에서 지친 한국인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군사독재의 서슬퍼런 1980년대를,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시절, 배고프고 힘들었던 그때를 추억했다. 초고속 통신망이 깔리고,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의 미디어 파워가 키워졌음에도, 많은 대중들은 1980년대로부터 오로지 좋은 기억들만 소환해내며 즐거이 웃는다. 이렇게 레트로는 공적 경험의 집단적 총제가 아니라 비집단적 흐름의 총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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