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막힌 시선 :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옛동네를 찾다

 

몇십 년 전 내가 살았던 거리를 찾아가봐도 머릿 속에서 애써 복원한 옛 풍경은 찾기 힘들어졌다. 떠들썩했던 동네 놀이터, 희미한 가로등 비치던 좁은 골목의 정겨움도 결국 기억 저편에서 생각의 걸음만 허락할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일년에 한 두번은 내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가 동네의 공터와 좁은 골목을 조용히 누벼보기도 했다. 서울 사대문 안의 역사적 명소들이 자리했던 곳에는 지표석이라도 남아 그때 그 시절을 회상케 해준다. 하지만 비범치 못한 나의 발걸음을 머물게할 동네와 마을의 지표석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서울에서 온갖 희노애락을 겪으며 자랐다. 한 사람의 인생이 세계사적인 이야기들의 전부라면 내가 일구고 스쳐온 삶의 곳곳은 얼마나 대단한 유적이었겠으며 얼마나 대단한 기념비가 되었을까? 결국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내 삶의 장소들은 커다란 아파트와 대형 건축물이 자리한 지반 아래로 묻히고 말았다. 추억의 소환과 옛 경험의 복원은 그 무게를 이길 만큼 힘이 세지 못하다.

산허리를 가로 막은 브랜드 아파트 단지는 코흘리개 산동네 아이들과 늘상 다방구, 자치기, 망까기를 했던 공터였지. 사람 키의 열배가 넘는 저 높이의 순환도로 교각이 있던 곳은 동네 여고생들의 단골 호떡집이었었지. 10년이 지나고 강산이 변한다지만 강산의 의미마저도 삼켜버린 도시개발의 완성물들은 이렇게 고독한 고향방문객에게 위로 대신에 헛한 서운함만 가득 안겨준다.

이곳이 그곳이었다는 사실은 성북구 정릉동, 옛 지명은 배밭골이라는 뻣뻣한 행정구역 표지판만이 알려주는 사실이다. 바깥에서 보고 가슴에 한껏 담을 수 있는 풍경과 정경은 사라졌다. 시선을 던지고 시선으로 낚아낼 수 있는 삶의 조각들을 만날 수가 없다.  나같은 이름모를 이방인의 시선은 막았겠으나 새로 들어찬 아파트와 오피스빌딩에는 그들만의 또다른 시선들이 내부의 공간에서 분주히 오고가겠지.

분주한 삶의 영역, 사람과 사람들이 만나고 마음을 교차하는 일의 영역은 이제 완벽히 분리되었나보다. 집에서 놀다가도 같이 모여 일하고, 일하다가 함께 마시고 먹으며 어우러지던 동네의 풍경은 여전히 누구에게도 완벽히 펼쳐낼 수 없는 내 기억의 저장소에 있을 뿐이다. 지금의 여유와 공백은 또다시 사라지고 좁혀질 것이다. 그렇게 먼 옛날도 아닌 옛 시절에 대한 추억은 갈수록 메말라가겠지.

몇 년이 지나서 다시 이곳을 찾을지 아니면 풍광좋은 시골마을로 여행을 떠날지 아직은 모르겠다. 어떤 선택이든 흘러간 시간 속 기억의 되돌림은 지금보더 더 헛헛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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