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ro : 언어를 성찰하라

민해경의 <서기 2000년>이란 노래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간

우리는 로케트 타고 멀리 저 별들 사이로 날으리

그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그대가 부르는 노래 소리 이 세상 숨어

우리 싸바싸바싸바싸바싸바

그날이 오면은 싸바싸바싸바싸바싸바

우리는 행복해요

다가오는 서기 200년은 모든 꿈이 이뤄지는 해 싸바싸바싸바싸바싸바

행복한 그날을 싸바싸바싸바싸바싸바 우리는 기다려

서기 2000년이 오면 더욱더 편리한 시대

그대의 즐거운 모습 나는 그어디서나 보이네

그때는 방황도 없고 저마다 행복한 마음

… 후략 …


가수 민해경 혹은 작사가가 꿈꾸던 유토피아가 실현되는 미래의 시간 2000년에서 인류는 무려 이십 년이나 열심히 더 나아갔다.

하지만, 가사와는 사뭇 다르게 2000년 이후에도 여전히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어디선가 인류는 전쟁을 치르고 있거나 준 전시 상태다.

평범한 인간들이 로켓을 타고 달나라 별나라로 향할 일은 생기지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욕망의 크기만큼 우리는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담보해줄 거란 헛된 거리의 욕망을 기웃거리며 승냥이마냥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아, 편리의 시대에 대해 묻는다면, 꽤 편리한 나날을 보내고 있긴 하다. 문밖은 위험한 세상인지라 온갖 모바일 기기로 밥과 관심을 간단하게 방에서 해결할 수 있다.

숨결도 담을 필요 없이, 손가락 몇 번의 튕김으로.


소통의 편리성에 기대어 말은 넘쳐나지만 실체와 믿음은 사라진 – 혹은 필요치 않은 – 시절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군집에서 개체로, 뭉텅이에서 한 가닥의 솜털로 비행을 시작할 때 우리는 믿었다.

사이버라는 신세계 위에서라면 너와 나를 지우며 어깨걸고 향유하던 연대에 대한 상실감을 충분히 상쇄해주고 보상해줄 초인이 등장할 거라고. 아니 우리 모두가 초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개인으로 스스로를 남겨 둔 채 다름을 창궐시키며, 사이버 커뮤니티 안에서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신박하고 입이 쩍 벌어지는 새로운 연대의 모범을 출범시키며 결단코 번성하리라고, 열매 맺으리라고.


하지만 아이러브스쿨과 프리챌, 그리고 싸이월드에 담겨 있던 파스텔톤의 안부인사들은 이십년이 지난 지금, 숱한 혐오와 자기 검열, 관종들을 먹고 사는 사이버 세상을 시전해주고 있다.

구원 같았던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연대와 말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가는 2020년의 즈음, 우리는 어떤 희망찬 미래를 노래해야 할까, 과연 할 수 있을까?

헛된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등장하지 않고, 그저 2020년의 탑골 가요로 남기 위해 오늘도 멜론 챠트는 열심히 음원 순위의 전쟁터, 혹은 사기터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서기 2040년이 오면 2020년의 탑골에서 어떤 향수와 공동체의 가능성을 감지하고 제 2의 양준일을 소환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희망의 찬가가 부정되는 시대, 결국 우리는 레트로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복고, 복고풍, 레트로, 뉴트로…

언제부터였을까? 인터넷으로 좀 더 편리하게 과거의 모습을 스캔하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던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과 레트로에 대한 소구는 궤를 같이 하는 듯도 하다.

현재의 시간들, 너무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되는 ‘지금’의 시간들은 비극에 다름 아니다.

고착된 수직적 사회계급 시스템의 전복은 요원해지고, 수평적, 동일 계층 내에서의 경쟁은 폭력에 다름 아닌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과거를 상상력에 기대어 예쁘게 채색하고 싶어진걸까?

블러 처리된 충분한 시간의 거리가 확보된 90년 전후의 시공간은 온통 뽀송뽀송한 파스텔톤이다.

​그러나, 폭력의 양상과 말의 형태만 달라졌을뿐, 시간이라는 카메라의 줌을 힘껏 끌어당겨 그시절의 거리, 학교, 공장과 군대를 들여다본다면

희극이 비극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학교 폭력은 학생들 간에서보다 교사들로부터의 권력 불균형에 기댄 수직적 폭력이 더 일상적이었고, 군대는 계급이라는 수직적 관계를 핑계삼아 다양한 폭력기술을 훈련받는 일그러진 남성성과 가부장제의 시원이 되어주었다.


인터넷의 등장은 입말도, 글말도 아닌 제 삼의 언어 형식을 등장시켰다.

소통과 진득한 자기 성찰의 언어가 아닌 일상적인 타인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언어를.

개인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근원적 불안과 21세기적 경쟁관계가 만들어 낸 불안에 대한 치유는 결국 타자를 인정하고 좀 더 합리적으로 경계를 조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온몸으로 섞이고 잠시뿐일지라도 감정을 나누는 섹스보다 자위가 더 손쉽게 순간을 자위하듯, 우리는 누군가를 알아가고 질문을 던지는 언어보다, 혐오와 비난의 손쉬운 공격으로부터 위태롭고 폭력적인 삶을 관통해 스멀스멀 파고드는 불안을 자위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공간은 이러한 자위의 언어를 잉태하기에 천혜의 장소가 아니던가.

나의 불안을 지우고, 대상화된 마녀를 화형시킬 장작을 끌어모아줄 익명의 언어.


자위의 언어를 만들고 소비했던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지금, 이곳의 죄를 직면하는 심판의 순간이 아니라, 죄가 씻겨져 나갈 수 있는 맥락없이 파편화된 과거의 어떤 순간 속으로의 도피일지도 모르겠다.

레트로의 성수를 받아 제 몸이 아닌 칼에 묻은 핏자국만 씻는 카인의 뒷모습. 

레트로는 실재하지 않는 믿음에 근거한 정서들을 기어코 찾아내며, 오늘의 비극을 과거의 희극(화)으로 잊고자 굳이 애쓴다.

고통을 직면하지 않으면, 공포를 만들어내고, 공포는 결국 부당한 곳에서 폭력을 행사하게 하며, 엉뚱한 곳에서 위로와 치유를 갈구한다.

레트로가 지금을 잊는 마약이 아니라, 현재에 더 생생한 역사성을 제공하고 미래에 대한 혜안을 불러올 소중한 자산으로 쓰이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때가 되면 몇년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단순한 유행과 패션의 관점이 아니라, 레트로를 관통하는 대중의 심리와 말하지 못한 불안을 후벼파고 달래줄 ‘레트로의 철학’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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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 : 언어를 성찰하라”에 대한 댓글 1개

  1. 오늘을 살고 있는, 동시대의 인간들이 겪어온 삶은 그야말고 수많은 격변기, 엄청난 과도기의 삶이었습니다. 20세기 들어서 단 한번이라도 격변기, 과도기가 없었던 시대가 있었나? 없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과 한국, 동아시아, 아프리카도 모두다 침략과 전쟁, 기술발달과 산업화, 미디어혁명으로 단 한 시대라도 우리가 국태민안, 태평천국의 시대를 산 적이 있는가? 없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처럼 변함이 없는데, 변화 무쌍한 자연의 변화가 있었다 하더라도 시기와 절기에 맞추어 움직였을 것인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달려가고 혁명했는가? 변화와 혁명, 혁신과 전환이 우리의 개인사를 이끄는 힘이 되고 만 현대인류의 삶!

    우리의 생각, 우리의 정서가 자꾸만 과거의 순간을 반추하며 찰나의 인본적 기억만이라도 소환하려는 노력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의 본질이 과하지 않고 넘치지 않으며 빠르지 않은 적절하고 적정한 그 무엇 혹은 이데아를 상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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